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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3주일

1. 제1독서: 스바 3,14-17: 주께서 너를 보고 기뻐 더덩실 춤을 추시리라.

+ 화답송: 기뻐하며 외쳐라. 너희가 기릴 분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이시로다.

2. 제 2독서: 필립 4,4-7: 주님께서 오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3. 복음: 루가 3, 10-18: 저희는 또 어떻게 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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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기쁨과 회개의 표시로 나누자"

* 오늘은 대림 제 3주일입니다. 전례상 오늘을 기쁨의 주일이라 부릅니다. 주님께서 오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며 구원의 날이 가까이 왔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신앙 안에서 그 무거운 십자가를 우리가 용기있게 짊어지는 것도 부활이라는 엄청난 기쁨을 미리 맛보기 때문입니다. 대림절은 통회화 보속의 시기이면서 동시에 큰 기쁨의 시기입니다.

따라서 오늘은 잔치의 기쁨을 앞당겨 맛보는 날입니다. 오늘의 입당송, 본기도, 제1독서, 응답송, 제2독서 등 전례의 데부분 내용이 이 기쁨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기쁨을 실감있게 나타내기 위하여 사제들이 미사 때 장미색 또는 분홍색 제의를 입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기쁨을 지니며, 나아가 이 기쁨의 동기와 목적을 성서에서 찾아야 합니다.

오늘의 1독서는 스바니야 예언서의 3장 마지막 부분인데, 이 부분은 바빌론 유배의 아픈 체험을 담고 있습니다. 예언자 스바니야가 활동했던 (기원전 640-609년) 앗시리아의 위세가 꺽이며 바빌론이 점차적으로 강대국이 되는 와중에 유다 왕국이 계속 수난을 겪어야 했던 시기의 인물입니다. 유배생활의 고통중에 이 예언자는 기쁨을 이야기하고 축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재앙이 곧 끝나고 하느님께서 원수들을 물리쳐주시리라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미래의 영광과 미래의 승리를 앞당기는 힘, 이것이 바로 기쁨이며 희망입니다.

제2독서는 사도 바울로가 감옥에서 쓴 필립비 서간의 말씀입니다. 바오로는 고통 가운데 기쁨을 이야기하며, 기쁨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모든 일을 다 하느님께 맡기고 평온한 마음으로 감수하면 뜻밖의 큰 기쁨이 주어진다는 가르침입니다.

* 또한 세례자 요한은 구세주의 길을 닦는 선구자이기에 기쁨을 예고합니다. 메시아가 오시어 (백성 정신의 변화를 통해서) 정의를 세우실 것이라는 기쁜 소식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의 잘못을 고발합니다. 고발은 큰 기쁨의 예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요한은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자기 보다 더 위대한 분 즉, 그리스도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기쁨의 원천입니다. 이분이 있기에 우리는 기쁘며 구원의 보증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쭉정이가 불탈 그날이 있기에 우리는 오늘도 알곡을 영글게 하며 노력하는 것입니다.

* 참된 기쁨, 행복, 즐거음,...이란 무엇인가? 영성적 기쁨은 사실 기쁨은 성령의 열매이며 하느님의 나라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였지만 환난이 오면 곧 없어지는 그러한 일시적 열광이 아니고, 시련 중에도 모범을 보이는 믿는 자의 열성적 기쁨입니다. 믿는 자들이 기쁜 마음으로 많은 희사를 하고 인격을 완성시키며, 형제적 일치를 도모하고 지도자들에게 순종하며, 진리에 성실하는 것은 현재와 주님의 재림의 날에 사도들의 기쁨이 됩니다.

믿는 자들을 진리와 일치시켜 주는 사랑은 항구한 기쁨을 마음에 간직하게 하고, 끊임없는 가도와 감사로써 이 기쁨은 커 나갑니다. 어떻게 사랑하는 당신 아들의 나라에 옮겨 주신 데 대하여 기뻐하지 않고,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지 않겠는가? 또한 열심한 가도도 기쁨의 원천입니다. 왜냐하면 희망이 기쁨을 생동케 하고 희망의 하느님의 믿는자의 마음을 기쁨으로 채워주시면서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기쁨은 신앙의 시련을 겪은 자에게만 주어집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날 때 기뻐 용약하겠지만, 제자는 그분의 수난에 참여한 정도에 따라서 그 기쁨이 주어질 것입니다. 자기 스승과 같이 현세에서 기쁨도다 십자가를 택하고, 재산을 다 빼앗겨도 기쁘게 받아들이고, 여러 가지 시련을 당할지라고 그리스도의 제자는 이들을 다시없는 기쁨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예수님께 있어서와 같이 사도들에게도 가난한 박해는 완전한 기쁨에로 인도하는 길입니다.

시련은 언젠가 끝날 것이고, 하느님은 당신 종들의 피를 흘리게 한 바빌로니아를 심판하시어 피의 복수를 하실 것입니다. 그때 하늘은 기쁨에 넘칠 것이고, "어린 양"의 혼인 잔치가 베풀어질 것이며 잔치에 참여하는 자들은 환희 중에서 하느님께 영광을 돌린 것입니다. 그리하여 현세에서부터 하느님의 자녀가 된 자들이 참여하고 있는 충만한 기쁨이 완전히 나타날 것입니다. 그들에게 선물로 내리신 성령으로 인하여 그들은 성부와 그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친교를 맺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상황안에서도 쉽게 포기하지 않고 믿음의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부정적인 생각을 공적적인 사고로 바꾸어야합니다.

* 전능하신 하느님, 우리 모두가 하느님 안에서 미래를 앞당길 수 있는 기쁨을 누리도록 큰 힘을 주소서. 아멘.

B) 자선주일

한국 주교회의는 1984년에 대림 제3주일을 "자선주일"로 정하였습니다. 이는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소외된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끼며, 그리스도의 평화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특별히 기억하기 위해서 마련된 날입니다. 그래서 이날에 모든 본당에서는 그러한 사람들을 위한 특별 헌금을 합니다. 우리가 쓰고 남은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삶을 즐거운 마음으로 이웃과 함께 나눕시다.

* 예수님은 세상에 오실 때 비천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가난하고 외롭고 병들고 슬펴하는 사람들 곁에 평생을 머물러 계셨습니다. 그분의 이웃은 밑바닥 인생들이었으며 밑바닥 인생들의 이웃은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때 당시 잘나고 똑똑하고 가진 것이 않았던 자들은 업신여겼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무시했습니다. 예수님이 밑바닥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잘나고 똑똑하고 있는 사람들하고만 사귀면 오시는 주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그분은 그쪽으로 오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을 통해서 주님은 오십니다. 그러면 그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란 도대체 누굽니까. 그것은 붙잡을 것이란 오직 주님밖에 없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천국을 차지합니다. 예수님을 차지합니다.

* 주위를 둘러보면 불우한 이웃들이 많습니다. 우리에게 손을 내미는 주님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그대로 그들을 외면해서는 안됩니다. 언젠가 본당에서 불우 이웃을 위해서 2차 헌금을 할 때 한 사목회 임원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본당도 어겹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말에 어이가 없었습니다. 막말로 기가 찼습니다.

예수께서는 재물을 하늘에 쌓으라고 하셨습니다. 땅에 쌓으면 좀먹거나 녹슬어서 못쓰게 되며 또 도둑이 훔쳐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하늘에 쌓는 것입니까. 그것은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에게 나누고 베푸는 것입니다. 없는 사람을 돌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만이 진정으로 내 것이 됩니다. 땅에 쌓은 것은 아무리 쌓아도 내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 쌓은 것만이 비로소 진정한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 주님께서 오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기쁘기 때문에 나누고 또한 지난 1년 동안 잘못 산 것이 많기 때문에 회개의 표시로 나누도록 합시다. 그리고 나눌 때 자기 것으로 채워지는 풍요로움을 얻게 되며 또한 바로 그 나눔 안에 주님께서 탄생하십니다.

C) 현대의 선구자

* 수천 년 동안 기다리고 기다리던 구세주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인류에게 참 빛을 비추어주셨고 절망 속에서 헤매는 인간에게 무궁한 희망을 안겨주셨으며 현실만을 바라보던 사람들에게 영원한 행복을 심어주신 메시아가 오셨습니다. 오직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 때문에 그분은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호화로운 왕궁에서 태어나시지도 않았고 더욱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오시지도 않았습니다. 마치 아침에 이슬 내리듯 조용히 오셔서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획기적인 변화를 일으키셨습니다. 그래서 세상사람들은 그분이 오신 것을 몰라보았고 눈뜨고도 그분을 알아보지 봇했습니다. 다만 세례자 요한만이 복청을 높여 그분이 요셨다고 증언하였고 어서 빨리 회개하여 그분을 맞이하라고 외셵습니다.

구약과 신약을 잇는 교량 역할의 세례자 요한은 예언자입니다. 그분은 또한 구세주의 길을 닦는 선구자이게에 기쁨을 예고합니다.

"당신이 누구요?"라는 질문에 자신의 위치를 똑바로 말한 선구자 요한처럼, 우리도 가끔 자신이 누구인지 반성하며 생활을 개선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혹시나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고 신앙행활에 갈팡질팡한다거나 또는 주님의 뜻을 따르는 데 우왕좌왕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더욱이 화려한 옷을 입었지만 속이 텅 빈 사람들처럼, 겉으로는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훌륭한 일을 하면서도 실제로는 신앙의 내실을 기하지 못하고 자신의 환덕을 소홀히 하였는지를 솔직하게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선구자인 요한을 극구 칭찬하신 다음, 복음의 정신을 따라 사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도 요한보다 더욱 큰일을 성취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려고 노력한다면 세계자 요한 못지안걁큁은 주님의 훌륭한 선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진정으로 주님의 선구자가 된 때, 비로소 세상 사람들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주님을 발견하게 되고 합당한 준비로 그분을 맞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 우리 모두 세례자 요한을 본받아 주님의 선구자가 되기로 다짐하면서, 인생의 참된 의미를 깨닫지 봇하고 방황하는 현대인들에게 주님을 널리 알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