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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 3 주일

"생명의 물"

"너희는 므리바에서처럼 마싸아의 그날의 광야에서처럼 너희 마음을 무디게 가지지 알라."시편 94,8의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이집트의 노예살이에서 기적적으로 탈출한 유다인들은 갈대바다를 건너 자유와 해방을 맛보며 감격의 시간을 갖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보장되지 못한 나날의 삶 속에서 유다인들은 하느님과 모세에게 불평을 털어놓습니다. 배고프고 목마르고 피곤한 여정 속에서 이들은 크게 원망하고 있습니다. 특히 갈증으로 견딜 수가 없어 불평을 터뜨린 것입니다. 갈증은 체험한 사람만이 그 고통스러움을 알 수 있습니다. 갈증은 참으로 견딜 수 없는 고통입니다. 갈증 때문에 불평하고 원망했다면, 그것은 별로 큰 잘못일 수 없습니다.

오늘의 제1독서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바로 이것입니다. 갈증은 참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 때문에 물이 필수적으로 요구됩니다. 물은 필연적 요소입니다. 그 갈증은 무한을 찾는, 하느님을 찻는 우리의 마음이어야 하며, 갈증을 무는 물은 바로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지팡이로 바위를 쳤을 때 바위가 갈라지며 물이 터져 나오게 되었습니다. 바위는 바로 그리스도의 상징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한 군사의 창으로 옆구리를 찔리셨을 때 물과 피가 나왔습니다. 예수의 깨어짐을 통해 교회가 탄생되고 은총이 샘솟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의 삶, 그리고 존재 자체가 바로 하느님의 큰 은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견디기 어려운, 나만 당한다고 느껴지는 그러한 고통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느님과 환경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사회적 소용돌이 속에서 주어지는 엄청난 제도적 폭력 앞에 몸부림치는 사람도 있고, 부모와 자녀 또는 부부 사이에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가치관의 차이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고 있고, 일상의 소박한 삶 가운데에서도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나만의 고통 때문에 피눈물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허다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불교의 가르침과 같이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성서의 가르침도 똑같습니다. 모든 고통에는 하느님의 뜻이 있고 또 교훈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고통을 이길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우리는 선조들의 삶과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찾아야 합니다. 십자가는 결코 장식품이 아닌 예수의 구체적 삶의 마지막 정리과정임을 우리는 이 사순절에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견딜 수 없는 갈증을 통해서만이 우리는 물의 고마움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깨는 아픔을 통해서만이 은총의 샘물은 주어집니다. 예수의 십자가가 바로 그것입니다. 시편작가는 므리바와 마싸아의 사건을 연상하면서 선조들의 무딘 마음을 책하기에 앞서 동시대인들에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너희 마음을 무디게 가지지 말라!" 무딘 마음은 이기심입니다. 무딘 마음은 재물과 현실에만 집착하고 있습니다. 무딘 마음은 자신을 마비시키는, 그리하여 결국에는 죽게 하는 병입니다. 이 무딘 마음을 개는 것, 그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이러한 회개를 통해서만이 구원의 물이 주어지며 이 생명의 물이 모두의 갈증을 풀어주고 기쁨과 행복을 줄 것입니다.

오늘의 요한 복음은 제1독서에 언급된 물의 내용을 심화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평화의 구세주로 오셨습니다. 유다와 사마리아의 지역 및 종교에 기인한 서로의 배타감정을 부수시며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꾀하고 계십니다. 선입견을 뛰어넘어 인간이 만든 온갖 유형의 벽을 부수는 것,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삶이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부끄러운 과거를 지녔으며 불충실한 그러한 사람입니다. 이 여인은 바로 하느님 앞에 선 우리 각자의 모습을 반영해줍니다. 도저히 자신의 과거를, 자신의 남편을 떳떳하게 말할 수 없는 이 여인에게도 거듭나는 기쁨과 은총이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이 오늘의 가르침입니다. 그것은 생명의 물인 세계를 통해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는 그러한 물, 영원한 물, 영영 목마르지 않는 물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우리는 모두 영생의 무로 늘 목을 축이고 있는 신앙인들입니다. 물은 풍요로운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물은 어떤 신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고 옛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물은 생명의 상징입니다. 만물은 물을 흡수해야만 살 수 있습니다. 사람도, 동물도, 식물도, 자연도, 모두 물을 필요로 합니다. 그 때문에 물은 바로 하느님적이며 그리스도적인 그 어떤 깊은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물은 우리를 깨끗이 씻어줍니다. 우리의 손과 발, 온몸을 우리는 무로 씻고 모든 음식을, 또 우리의 생활주변을 물은 깨끗하게 하고 있습니다. 물이 지닌 이러한 의미는 세례를 통해 장엄하게 펼쳐집니다.

세례의 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과거를 말끔히 씻고 깨끗한 모습으로 하느님께 다가갑시다. 그리고 시원한 물을 마시면서 우리 생명을 보존합시다. 물이 없는 현실을 생각할 수 없듯이, 하느님을 떠난, 그리스도를 떠난 우리의 삶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물은 자연의 어머니이며 생명의 근원입니다. 물을 통해, 물을 대한鱁 때마다 이러한 신비를 깊이 묵상하도록 합시다.

전능하신 하느님, 생명의 물, 은총의 물을 주십시오. 각박한 이 현실에, 메마른 우리 마음에 물을 부어지시어 사랑과 화해의 싹이 트도록 당신 십자가의 쟁기로 우리의 무딘 마음을 갈아주소서. 우리는 모두 사랑의 열매를 맺어야 할 당신의 밭임을 깨닫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