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ke your own free website on Tripod.com
사순 제 5 주일

"눈먼 소경보다 더 눈이 먼 눈뜬 바리사이"

* 오늘은 사순 제4주일로, 기쁨의 주일입니다. 오늘 전례가 "환희"의 의미를 표현하고 있는 이유는 아마도 이지만 행위, 즉 고레스의 해방칙력 때문일 것입니다. 어쨌든 이로써 "환희의 주일" 이라는 명칭은 오늘의 전례를 열어주는 "입당송"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예루살렘아, 즐거워하라. 그를 사랑하는 자 모드들 모여라 쓸품에 잠겼던 너희, 즐거움에 넘치며, 뛰놀며 그 위로의 젖을 흠 뻑 마셔라". 고 불리는 것이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습니다.

* 사순 시기가 되면 우리들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극기, 절제, 고통, 찹회, 단식, 업숙함 등입니다. 이것은 모든 인생이 수없이 많아게 되는 일들 중의 한 부분입니다. 어떠한 삶의 형태 속에서도 가져야만 되는 필수불가걸한 요소입니다. 그러면서 삶의 깊은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사순절의 이러한 내용들은 우리들을 더욱 성숙의 길로 인도합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사순절이 가져다주는 의미에 귀 기울이고 적극적인 삶의 자세를 견지해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를 위해 죽으신 십자가 상의 예수님께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한 부활에의 여정에 있어서 반고비를 넘겼기 때문에 잠시 쉬며 나머지 여정을 더욱 기쁘게 가기 위한 다짐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비자들이 세례의 의미를 되새기며 "그리스도를 통한 빛의 삶"을 실현할 수 있다는 희망에 벅차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오늘 성서말씀의 주제는 바로 빛입니다. 빛은 지난 주의의 주제였던 물과 함께 성서상 가장 중요한 구원의 상징입니다. 물과 빛은 바로 세례를 특징짓는 핵심적 요소입니다. 물을 통하여 깨끗해지고 생기를 되찾은 신앙인은 모름지기 그리스도와 같이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할 소명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 오늘의 요한 복음은 태생소경의 눈을 뜨게 해주신 예수의 기적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고통과 질병의 문제입니다. 유다인들은 고통과 질병을 죄에 대한 벌로만 생각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아주시면서 고통과 질병이 지닌 하느님의 교육적 의미를 말씀하십니다. 태생소경의 경우, 그것이 자신이나 부모의 잘못에서 연유된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 예수의 능력이 나타날 수 있는 기적의 도구라는 사실입니다. 예수께서는 흙을 침에 개어 소경의 눈에 바르셨습니다. 이것은 상징적 행위로, 성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은총과 능력이 인간의 그 어떤 외적 행동과 의식을 통해 나타난다는 암시입니다. 복음의 전체적 교훈은 소경이 눈을 뜨고 보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소경들입니다. 그래서 보지 못하고 올바로 판단치 못하며 어둠 속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우리에게 다가오시면서 빛을 주시고 새로운 가치를 깨닫게 하시며, 믿음을 통해 만물을 새롭게 이해하도록 이끌고 계십니다. 성서는 늘 역설적 진리를 강조합니다. 눈을 뜬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오히려 눈먼 소경보다 더 눈이 멀어 있다는 고발입니다. 이와 같이 복음은 물리적, 외적 관계를 뛰어넘어 그 어떤 초월 및 내면 그리고 신앙의 세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태생소경은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 빛 자체이신 예수를 감지하고 그분 앞에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예수는 바로 사람의 아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하느님의 아들이며 시대의 아들이고 모든 이의 벗입니다. 사람의 아들을 믿느냐는 예수의 물음은 바로 자신과 이유에 대한 개방성을 요구하는 내용입니다. 빛은 필연적으로 끝없이 확산되며 번지게 되어 있습니다. 빛을 가로막는 온갖 장애물, 폐쇄성, 바리사이파적인 옹고집, 이것이 사실은 우리의 눈을 멀게 하는 요소들입니다. 잠에서 깨어나고, 어둠에서 헤쳐나와 빛을 감지하고 빛의 삶을 살도록 다짐합시다.

빛이신 주 예수여, 당신 친히 우리의 길잡이가 되어주시고 당신의 빛을 받아 우리 모두 세상의 빛이 되게 하소서. 아멘.